한국 정신의 못자리, 영주 부석사와 순흥 소수서원 (김정숙 명예교수)
한국 정신의 못자리, 영주 부석사와 순흥 소수서원 김 정 숙 명예교수 (인문대학 역사학과) 태백산맥으로 잇는 경북 영주와 충북 제천의 신선 세계 대학시절 우리 과는 전체가 참여하는 봄 정기답사가 있고, 가을에는 그룹답사를 했 다. 그리고 두 답사의 결과를 종강 직전에 ‘사진 및 탁본 전시회’로 정리했다. 1975년 2학년 때 우리 그룹은 영주 일대를 답사했다. 여대생 여덟 명이 서울에서 기차, 버스 를 갈아타고 굽이굽이 돌아 부석사 앞마을에 다다르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. 예약 도 하지 못한 우리는 한 집을 두드리며 숙박을 청했다. 주인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 니, 우리보고 방을 청소하고 불을 때면 그 사이에 저녁을 지어주겠다고 했다. 우리는 감지덕지, 나누어서 방청소와 아궁이불 팀으로 나누었다. 불 땐다는 일은 그냥 장작에 불붙이면 되는 게 아니었다. 연기가 얼마나 나던지 번 갈아 울면서 뛰쳐 나왔다. 그 난리를 치르며 저녁을 먹고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 다. 한없이 긴 흙길에 코스모스가 양옆에 가득 피어 있었다. 달빛에 가지각색의 코스 모스가 흔들리고 절은 어디있는지도 모르겠고 끝없이 걸었다. 그리고 밤에 들어와서 도 수다는 계속되었다. 지친 친구들은 왜 자지도 않냐며, “여우가 물어가라”고 소리치 기도 했다. 그래, 여우가 나올 것 같은 시골이었다. 아침이 왔다. 아침에 밖에 나가서 더 놀랐다. 나는 사과가 나무에 달린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. 당시 사과 저금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, 꼭 그만한 크기의 사과가 나뭇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. 과수원 주인을 찾아서 사과를 한 소쿠 리 흥정했다. 우리는 사과를 먹고 싶은 것 이상으로 우리가 사과를 직접 따고 싶었다. 그러나 주인은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. 따다가 잘못하여 눈을 건드리면 다음 해에 사 과가 열리지 않는단...